[#7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4│우리는 나물의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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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경고 4. 우리는 나물의 민족입니다』
1. 나물의 민족
한국 밥상을 떠올리면 수많은 반찬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나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봄이면 독성이 있다는 고사리와 아주까리, 심지어 옻나무까지 여린 순을 따 우려내어 먹습니다. 늦가을, 이미 억세진 나물도 삶아 말렸다가 겨울에 다시 불려 부드럽게 상에 올립니다.
한겨울엔 나물이 없냐고요? 추위를 견디는 시금치가 있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초가 있습니다. 눈밭을 헤치고 겨우 고개를 내미는 머위순도 있습니다. 김치 역시 넓게 보면 나물의 한 갈래라 할 수 있겠지요. 생으로 무쳐 먹는 생나물, 데쳐서 버무린 숙채, 말렸다가 불려 볶아 먹는 묵나물까지. 조리법 또한 다채롭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나물의 민족’입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풀을 밥상에 올리는 데 열정적인 나라입니다. 한 상에 천 원 남짓 드는 콩나물부터 킬로그램에 2만 원 가까이 한다는 눈개승마, 봄이면 미식가들이 찾아 먹는 엄나무순과 두릅까지.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공원에서 나물을 뜯다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낯선 땅에서도 봄기운이 돌면 우리는 먼저 땅을 살핍니다.
독일에 지천으로 자란다는 ‘곰파’는 한국인에게는 값비싼 명이나물로 여겨져 각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캐나다의 주몬트리올대한민국총영사관은 매년 봄이면 공원과 보호구역 내 야생 식물 채취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안내문을 공지합니다. 나물을 향한 그리움이 법을 넘어설 만큼 깊다는 사실은 어쩌면 웃픈 장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계절을 뜯어 먹고, 산과 들을 삶아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2. 나물 만들기, 고기 굽기보다 어렵다
나물과 채소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채소가 재료라면, 나물은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조리된 채소 반찬을 뜻합니다. 물론 들과 산에서 채집한 식물 자체를 ‘나물’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요즘 가정에서 육류 요리는 비교적 수월합니다. 냉장·냉동 기술 덕분에 보관이 쉽고, 퇴근길에 사 온 고기를 양념해 굽기만 하면 한 끼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나물은 다릅니다.
싱싱한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손질, 데치기, 물기 짜기, 양념하기까지 공정이 많습니다. 말리거나 염장해 두었다면 다시 불리고 삶는 과정이 더해집니다. 조금만 오래 데치면 물러지고, 덜 익히면 질깁니다. 철이 아니면 향이 옅고, 때를 지나면 억셉니다. 게다가 냉장고에서도 사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맛과 식감이 금세 떨어지지요.
어쩌면 나물은 ‘자연의 시간’을 존중해야만 완성되는 음식인지도 모릅니다.
3. 식당 반찬의 변화_편리함이 밀어낸 것들
언젠가부터 식당 상차림이 단순해졌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던 나물 대신 언제 가도 비슷한 반찬이 오릅니다. 김치와 콩나물, 샐러드, 장아찌, 단무지와 어묵볶음. 익숙하고 안정적인 맛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봄도, 가을도 없습니다.
나물은 손이 많이 갑니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데치고 물기를 짜고 양념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냉장 보관도 오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량 조리와 유통 중심의 외식 산업에서 나물은 효율이 낮은 음식이 됩니다.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나물은 밀려났습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했고, 시스템은 그 선택에 맞춰 재편되었습니다. 계절은 사라지고, 표준화된 맛이 남았습니다. 나물의 자리를 채운 것은 손쉬운 조리와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반찬들입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소비가 들어섰습니다.
4. 공동체의 식탁은 왜 사라졌는가
나물은 원래 공동체의 음식이었습니다. 봄이면 동네 어르신이 먼저 고사리를 꺾고, 누군가는 씀바귀를 캐고, 또 누군가는 손질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건 독이 있으니 오래 우려야 한다.”
“이건 데치지 말고 생으로 무쳐라.”
그 말들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익힌 경험이었고, 세월이 축적된 지식이었습니다. 나물을 다듬는 시간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루에 둘러앉아 손을 놀리며 나누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쌓았습니다.
함께 캐고, 함께 삶고, 함께 나누는 과정.
그 과정이 곧 공동체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을 생략합니다.
과정 없는 결과만 소비합니다.
마트에는 이미 손질된 채소가 진열되어 있고, 식당에는 공장에서 조리된 반찬이 납품됩니다. 계절은 표준화되고, 맛은 균질화됩니다. 봄나물은 사시사철 냉동 상태로 유통되고, 산에서 캐던 향은 물류창고를 거치며 무난한 맛으로 길들여집니다.
문제는 단지 나물의 종류가 줄어든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손을 쓰는 시간이 사라졌고, 계절을 감각하는 능력이 무뎌졌으며, 음식을 둘러싼 대화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음식을 먹지만, 음식과 맺는 관계는 얕아졌습니다.
누가 키웠는지, 언제 자랐는지, 어떻게 손질되었는지 모른 채 소비합니다.
음식은 이야기를 잃고 상품만 남았습니다.
빠른 도시 생활, 맞벌이 구조, 장시간 노동.
이것을 개인의 게으름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는 이미 우리의 시간을 쪼개 놓았습니다. 저녁 한 끼를 위해 두 시간을 들이는 일은 사치이며 비합리적인 시간의 소비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물을 함께 만들며 시간을 나누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접시를 마주합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말없이 식사를 마칩니다. 밥상은 남아 있지만, 식탁은 비어 있습니다.
나물은 불편한 음식입니다.
손이 많이 가고, 오래 두지 못하며, 철을 벗어나면 제 맛을 잃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했습니다.
불편함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설계해 왔습니다.
편리함은 효율을 높였지만, 동시에 관계를 축소했습니다.
대량 생산과 장기 보관, 균질한 맛은 산업에는 유리했지만 공동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편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관계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편리함은 늘 비용을 숨깁니다.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함께 만드는 시간’이었고, ‘공유하는 식습관’이었으며, ‘계절을 몸으로 기억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나물의 민족인가요?
산과 들을 뒤져 계절을 건져 올리던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계절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인가요.
나물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단순히 반찬의 공백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관계의 빈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홍보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1. 나물의 민족
한국 밥상을 떠올리면 수많은 반찬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나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봄이면 독성이 있다는 고사리와 아주까리, 심지어 옻나무까지 여린 순을 따 우려내어 먹습니다. 늦가을, 이미 억세진 나물도 삶아 말렸다가 겨울에 다시 불려 부드럽게 상에 올립니다.
한겨울엔 나물이 없냐고요? 추위를 견디는 시금치가 있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초가 있습니다. 눈밭을 헤치고 겨우 고개를 내미는 머위순도 있습니다. 김치 역시 넓게 보면 나물의 한 갈래라 할 수 있겠지요. 생으로 무쳐 먹는 생나물, 데쳐서 버무린 숙채, 말렸다가 불려 볶아 먹는 묵나물까지. 조리법 또한 다채롭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나물의 민족’입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풀을 밥상에 올리는 데 열정적인 나라입니다. 한 상에 천 원 남짓 드는 콩나물부터 킬로그램에 2만 원 가까이 한다는 눈개승마, 봄이면 미식가들이 찾아 먹는 엄나무순과 두릅까지.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공원에서 나물을 뜯다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낯선 땅에서도 봄기운이 돌면 우리는 먼저 땅을 살핍니다.
독일에 지천으로 자란다는 ‘곰파’는 한국인에게는 값비싼 명이나물로 여겨져 각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캐나다의 주몬트리올대한민국총영사관은 매년 봄이면 공원과 보호구역 내 야생 식물 채취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안내문을 공지합니다. 나물을 향한 그리움이 법을 넘어설 만큼 깊다는 사실은 어쩌면 웃픈 장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계절을 뜯어 먹고, 산과 들을 삶아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2. 나물 만들기, 고기 굽기보다 어렵다
나물과 채소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채소가 재료라면, 나물은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조리된 채소 반찬을 뜻합니다. 물론 들과 산에서 채집한 식물 자체를 ‘나물’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요즘 가정에서 육류 요리는 비교적 수월합니다. 냉장·냉동 기술 덕분에 보관이 쉽고, 퇴근길에 사 온 고기를 양념해 굽기만 하면 한 끼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나물은 다릅니다.
싱싱한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손질, 데치기, 물기 짜기, 양념하기까지 공정이 많습니다. 말리거나 염장해 두었다면 다시 불리고 삶는 과정이 더해집니다. 조금만 오래 데치면 물러지고, 덜 익히면 질깁니다. 철이 아니면 향이 옅고, 때를 지나면 억셉니다. 게다가 냉장고에서도 사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맛과 식감이 금세 떨어지지요.
어쩌면 나물은 ‘자연의 시간’을 존중해야만 완성되는 음식인지도 모릅니다.
3. 식당 반찬의 변화_편리함이 밀어낸 것들
언젠가부터 식당 상차림이 단순해졌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던 나물 대신 언제 가도 비슷한 반찬이 오릅니다. 김치와 콩나물, 샐러드, 장아찌, 단무지와 어묵볶음. 익숙하고 안정적인 맛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봄도, 가을도 없습니다.
나물은 손이 많이 갑니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데치고 물기를 짜고 양념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냉장 보관도 오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량 조리와 유통 중심의 외식 산업에서 나물은 효율이 낮은 음식이 됩니다.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나물은 밀려났습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했고, 시스템은 그 선택에 맞춰 재편되었습니다. 계절은 사라지고, 표준화된 맛이 남았습니다. 나물의 자리를 채운 것은 손쉬운 조리와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반찬들입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소비가 들어섰습니다.
4. 공동체의 식탁은 왜 사라졌는가
나물은 원래 공동체의 음식이었습니다. 봄이면 동네 어르신이 먼저 고사리를 꺾고, 누군가는 씀바귀를 캐고, 또 누군가는 손질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건 독이 있으니 오래 우려야 한다.”
“이건 데치지 말고 생으로 무쳐라.”
그 말들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익힌 경험이었고, 세월이 축적된 지식이었습니다. 나물을 다듬는 시간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루에 둘러앉아 손을 놀리며 나누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쌓았습니다.
함께 캐고, 함께 삶고, 함께 나누는 과정.
그 과정이 곧 공동체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을 생략합니다.
과정 없는 결과만 소비합니다.
마트에는 이미 손질된 채소가 진열되어 있고, 식당에는 공장에서 조리된 반찬이 납품됩니다. 계절은 표준화되고, 맛은 균질화됩니다. 봄나물은 사시사철 냉동 상태로 유통되고, 산에서 캐던 향은 물류창고를 거치며 무난한 맛으로 길들여집니다.
문제는 단지 나물의 종류가 줄어든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손을 쓰는 시간이 사라졌고, 계절을 감각하는 능력이 무뎌졌으며, 음식을 둘러싼 대화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음식을 먹지만, 음식과 맺는 관계는 얕아졌습니다.
누가 키웠는지, 언제 자랐는지, 어떻게 손질되었는지 모른 채 소비합니다.
음식은 이야기를 잃고 상품만 남았습니다.
빠른 도시 생활, 맞벌이 구조, 장시간 노동.
이것을 개인의 게으름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는 이미 우리의 시간을 쪼개 놓았습니다. 저녁 한 끼를 위해 두 시간을 들이는 일은 사치이며 비합리적인 시간의 소비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물을 함께 만들며 시간을 나누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접시를 마주합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말없이 식사를 마칩니다. 밥상은 남아 있지만, 식탁은 비어 있습니다.
나물은 불편한 음식입니다.
손이 많이 가고, 오래 두지 못하며, 철을 벗어나면 제 맛을 잃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했습니다.
불편함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설계해 왔습니다.
편리함은 효율을 높였지만, 동시에 관계를 축소했습니다.
대량 생산과 장기 보관, 균질한 맛은 산업에는 유리했지만 공동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편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관계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편리함은 늘 비용을 숨깁니다.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함께 만드는 시간’이었고, ‘공유하는 식습관’이었으며, ‘계절을 몸으로 기억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나물의 민족인가요?
산과 들을 뒤져 계절을 건져 올리던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계절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인가요.
나물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단순히 반찬의 공백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관계의 빈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홍보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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