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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9│숫자로는 읽을 수 없는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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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경고 9. 숫자로는 읽을 수 없는 음식들』

-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

“유통기한 5일 지난 소고기 먹어도 되나요?”
“유통기한 지난 우유 그냥 버리나요?”
“냉동식품 유통기한 지나쳐도 드시나요?”
“미개봉인데 유통기한이 지난 건 버리나요? 먹나요?”
“엄마가 주신 콩이 오래되었는데 먹을까요? 버릴까요?”

실제로 광명시 맘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질문입니다. 바로 버린다는 댓글과 상태를 보고 먹는다는 댓글들이 늘 반반으로 올라오곤 합니다.

여러분은 대량으로 자주 사게 되는 식재료들을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마트의 흔한 묶음 판매는 자칫 버려지는 식재료를 양산하는 데 한몫을 하곤 합니다. 냉장과 냉동도 만능은 아니지요. 결국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식재료도 적지 않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단순한 가정의 정리 문제가 아닙니다. 생산지에서 식탁까지 오기 위해 사용된 물과 토지, 연료, 포장재, 노동력이 함께 버려지는 환경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두부 한 모와 우유 한 팩 뒤에는 보이지 않는 탄소발자국이 남습니다. 날짜를 기준으로 버리는 습관이 반복될수록 식탁은 편리해질지 몰라도 지구는 그만큼 더 무거운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굶주림의 역사 속에서 자란 세대들은 식재료의 특성을 알아보고 지혜롭게 갈무리해 먹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식품에 표기된 유통기한에 적힌 숫자로 판단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유통기한’은 사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날짜라기보다,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에 가까웠습니다. 제조사와 유통업체 입장에서 품질을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시점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유나 두부처럼 냉장 보관이 잘 이루어진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더라도 일정 기간 충분히 섭취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모든 식품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보관 상태와 식품 특성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유통기한이 지났다. = 무조건 버려야 한다.’고 받아들여 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소비기한’입니다.

 소비기한은 식품을 올바르게 보관했을 때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판매 가능한 날짜가 아니라 실제 소비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정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를 본격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비기한조차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생존 식량이자 가장 안전한 보관법의 산물인 ‘건조 곡물’은 숫자로만 재단할 수 없는 대표적인 식품군입니다. 건조 곡물은 수분 함량이 낮아 보관만 잘하면 몇 년을 두고 먹을 수 있지요. 물론 여기에는 ‘보관을 잘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전제가 붙습니다. 결국 숫자가 몇 번을 가리키든, 최종 판단은 사람의 냄새, 색, 촉감 같은 오감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판별법은 숫자가 아닌 철저한 경험과 보관의 지혜에 의존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일상 속에서 이러한 지혜를 배워왔습니다. 필자가 어릴 적, 우리 가족은 300가구 정도가 함께 모여 농사를 짓는 대규모 주말농장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도 자그마한 텃밭을 일궜고, 오고 가는 이웃들과 각자 재배한 작물을 나눠곤 했습니다. 수확물이 넘쳐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재료를 오래 두고 먹는 방법도 익혀야 했습니다. 나물은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거나 말려 보관했고, 다른 작물들도 밑손질을 한 뒤 보관하며 한 번씩 냉장 냉동고를 뒤집어 "이건 버리고, 이건 조금 더 두어도 되겠다." 하며 정리하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콩입니다. 어느 가을날, 작은 방에 둘러앉아 콩을 거두던 기억이 납니다. 콩알이 멀리 튀어나갈까 봐 문을 꼭 닫고, 마른 콩깍지를 손으로 비틀고 털어내며 알알이 콩을 모았지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갈무리한 소중한 콩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틀간 땀 흘려 모은 콩을 플라스틱 빈 병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혹여 곰팡이라도 필까 노심초사하며, 내 손으로 일군 것이 아까워 아끼고 아껴가며 밥에 넣어 먹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콩은 거의 7~8년 동안 우리 집 식탁에 올랐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콩의 유통기한을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물에 불린 콩은 언제나 신선했고, 며칠 동안 물을 주어 기른 콩나물은 파릇파릇하게 새싹을 틔워냈습니다. 숫자는 멈추었을지언정, 콩 안에 깃든 생명력은 살아있었던 것이지요.

  예전에는 어른들이 냄새를 맡아보고, 손으로 만져 보며 "이건 괜찮다", "이건 상했다"고 알려주곤 했습니다. 음식의 상태를 판단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경험이자 세대 간에 전해지던 감각의 유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편리함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숫자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분명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것이 식재료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숫자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음식은 숫자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입니다. 같은 날짜를 가진 식품이라도 보관 환경에 따라 상태는 달라지고, 같은 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긴 시간과 노동이 담긴 생명의 기록이 됩니다.

식탁 위에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음식을 아끼고 보살피던 사람들의 지혜와, 대량 소비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에 대한 질문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인쇄된 날짜는 안전을 돕는 안내판일 뿐입니다. 내 식탁의 마지막 판단자는 결국 나의 오감과 경험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주방과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를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숫자를 읽는 능력만큼이나 음식을 읽는 감각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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