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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공익홀씨단이 만난 사람] 씨앗학교 양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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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힘든 줄 모르겠어요"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이유
-씨앗학교 양인자님 인터뷰

양인자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22년 무렵이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밀짚모자를 쓰고 광명시 하안 문화의 집에서 광명문화재단 관련 사업을 진행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당시 직접적인 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뙤약볕 아래 그녀가 쓴 밀짚모자의 인상은 뇌리에 깊게 남았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를 만난 곳은 ‘광명텃밭보급소’였습니다. [가을잔치]라는 행사장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모자가 상징하듯, 그녀는 언제나 밭과 함께였습니다.

이름: 양인자
· 주요 활동 및 경력: 광명텃밭보급소 전 대표, 씨앗마을 대표, 전국씨앗도서관 씨앗수집팀장, 토종팜 대표, 광명시토종씨앗도서관 운영
· 활동 분야: 도시농업인 양성, 토종씨앗 채종 및 나눔, 친환경 농업 실천

그녀는 2010년 광명도시농부학교 교사 양성 과정을 수료하며 본격적으로 농업에 입문했습니다. 주부의 일상에서 벗어나 충현박물관 해설사로 마을 활동을 시작했고, 개인 역량 강화를 위해 공부하던 중 우연히 광명도시농부학교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1. “농부는 농약 안내서가 아니라, 작물의 생리를 알아야 합니다”

양인자 씨는 스스로를 ‘토종 씨앗 해설가’ 혹은 ‘토종 씨앗 활동가’라 부릅니다. 그녀가 말하는 ‘토종 씨앗’이란 단순히 우리 땅에서 나는 씨앗을 넘어, 조상들이 수확한 작물 중 가장 실한 것을 골라 매년 다시 심고 거두기를 반복하며 우리 기후와 풍토에 완벽히 적응시킨 생명의 결실입니다.

그녀는 토종 씨앗이 왜 특별한지 설명합니다.

“토종 씨앗은 특정 지역의 기후와 토양, 병충해에 강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덕분에 농약이나 비료를 과하게 쓰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그녀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광명시를 넘어 전국 어디든 토종 씨앗의 흔적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직접 차를 몰고 달려가 씨앗을 채집하고 보존합니다. 현장을 누비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우리 식탁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의 농업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농부들은 종묘사에서 패키지로 씨앗과 농약을 사 와서, 안내서에 적힌 대로 약을 치며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게 자란 작물의 생리를 농부가 알 리가 없죠.”

양인자 선생님은 농부가 종묘사의 패키지 상품에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땅에서 적응한 씨앗을 직접 채종하고 이어가는 과정이야말로 농부의 역할이자 농업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이유

양인자 씨에게 땅을 일구는 일은 단순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가치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종의 보존을 위해 다양한 토종 씨앗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옛것을 간직하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자산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더불어 토종 씨앗은 식량주권과도 직결됩니다. 양인자 선생님은 청양고추 사례를 언급하며 국내 종자산업이 외국계 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현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1980년대 초 국내에서 개발된 청양고추는 우리 식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추 품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주요 종묘 회사들이 잇따라 해외 기업에 인수되면서, 청양고추를 비롯한 여러 품종의 권리와 종자 사업도 외국계 기업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나라 종자산업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청양고추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배추와 무, 파프리카 등 주요 채소의 종자 시장에서도 외국계 기업의 영향력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양인자 선생님이 전국을 누비며 이름 없는 토종 씨앗을 채집하고 보존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 품종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토종 씨앗을 보전하고 이어가는 일은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 세대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3. 아이들의 손끝에 닿은 수백 년의 유산

인터뷰가 한창이던 날, 텃밭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토종 씨앗 해설가라는 직업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찾아온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양인자 선생님의 수업은 교과서보다 생생했습니다. 그녀는 지식을 나열하는 대신, 주머니 속에서 보물처럼 씨앗들을 꺼내어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하나씩 올려주었습니다.

“이 선비잡이콩을 볼까요? 옛 선비들이 손에 먹을 잔뜩 묻힌 채 콩을 집어 먹어서 껍질에 얼룩이 생겼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단다.”

아이들의 눈이 금세 호기심으로 반짝였습니다. 쥐 이빨처럼 작고 뾰족하게 생긴 ‘쥐이빨 옥수수’를 보여주며, 이것으로 고소한 팝콘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에 선생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아이들도 금세 토종씨앗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토마토 씨앗에 달린 미세한 털을 관찰하고, 시금치 씨앗에 돋아난 뿔을 신기해하며 아이들은 흙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씨앗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흑보리에 대한 설명을 듣던 한 학생은 “저도 이 씨앗을 받아가 직접 심어보고 싶어요”라며 눈을 빛내기도 했습니다. 토종 씨앗 활동가란 이처럼 수백 년을 이어온 생명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해설’하고, 그 가치를 직접 만지며 느끼게 해주는 길잡이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 “그래도 힘든 줄 모릅니다” – 멈추지 않는 이유

활동가로 사는 삶이 늘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텃밭을 일구고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쉴 틈 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때로는 토종 작물을 찾는 이들과 생산자를 연결해 줄 공간과 플랫폼의 부재가 현실적인 벽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농사도 지어야 하고 손님도 응대해야 하고, 사실 돈벌이가 크게 되는 일도 아니지요. 토종 작물을 사고 싶은 분들과 팔고 싶은 분들은 있는데, 이들을 연결해 줄 마땅한 터전이 부족한 게 늘 안타까워요.”

수익 구조를 고민하며 토종 작물로 막걸리를 만드는 키트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밭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모르겠어요.”

그녀가 툭 던진 한마디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의 수익보다 더 큰 가치, 즉 우리 씨앗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녀를 매일 텃밭으로 이끄는 원동력인 듯했습니다. 그녀에게 텃밭은 일터이자, 소중한 생명의 미래를 키워내는 연구실인 셈입니다.

수익도 없고 명예도 보장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밭에서 일하며 토종씨앗을 알리는 이일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텃밭 한구석에서 싹을 틔운 작은 토종 작물들이 보였습니다. 보리, 쌀, 목화......양인자선생님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언젠가 우리 식탁과 들판을 다시 풍성하게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그녀가 아이들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씨앗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렸던 '생명의 주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종씨앗 활동 참여 안내]
양인자 선생님의 토종씨앗 이야기와 토종텃밭 활동에 동참하실 분들은 아래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km9114@hanmail.net
연락처: 010-2337-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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