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홀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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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현장스케치]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2026년 공익활동가 주간, 공익활동가 평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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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활동가 주간, 대추리에서 평화를 배우다』

매년 7월 첫째 주는 공익활동가 주간입니다. 2026년은 6월 29일(월)부터 7월 3일(금)까지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공익활동가를 응원하고, 그들의 활동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며 지지와 연대를 확산하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4년 이후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습니다.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도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여러 활동가를 격려하고 공익활동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 왔지요.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 공익활동가 평화여행
일시 : 2026.6.30.(화) │ 장소 : 대추리평화마을(경기도 평택시)

2. 공익활동가 희노애락 이야기 마당
일시 : 2026.7.3.(금) │ 장소 : 광명시평생학습원 104호
 
3. 공익활동가 활력회복지원
일시 : 2026.7.10.(금) │ 장소 : 메가박스 AK프라자광명점(일직동)

평택 대추리 평화마을 견학을 신청하며 제가 처음 떠올린 것은,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성공적인 수익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녹색농촌체험마을'이라는 타이틀로 농촌 체험이 상품화되어 관광 수입을 올리는 사례들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대추리는 제가 알던 '체험마을'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곳을 파주의 어느 마을인가로 혼동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 마을은 그냥 마을이 아니라, 대추리 평화마을이라 불리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번 견학의 시작이었습니다.

평택 대추리 평화마을 견학을 신청하며 제가 처음 떠올린 것은,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성공적인 수익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녹색농촌체험마을'이라는 타이틀로 농촌 체험이 상품화되어 관광 수입을 올리는 사례들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대추리는 제가 알던 '체험마을'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곳을 파주의 어느 마을인가로 혼동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 마을은 그냥 마을이 아니라, 대추리 평화마을이라 불리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번 견학의 시작이었습니다.

1940년대 초 일제강점기, 군용 비행장 건설을 명목으로 주민들은 처음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농토를 수용당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비행장을 확장하면서 또다시 밀려난 주민들은 기지 울타리 인근의 척박한 황무지를 일궈 새로운 마을을 세웠습니다. 황새가 머무는 논이라 하여 '황새울 들판'이라 불리던 그곳은, 학교와 길 하나까지도 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삶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러나 2005년, 정부의 주한미군기지 이전 확장 사업에 따라 세 번째 강제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인들의 이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땅을 잃는다는 것은 생존의 터전을, 나아가 삶의 생명줄을 통째로 끊기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넓은 평야'라는 이름처럼 풍요로웠던 대추리가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한 그 순간, 주민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기로 했습니다. 암울했던 시대,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주에는 속절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세 번째만큼은 결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농사일마저 잠시 내려놓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숫자와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935일: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주민들의 촛불 집회 일수.
285만 평: 미군기지 확장으로 사라진 옛 대추리와 도두리의 전체 면적.
137명: 2006년 5월 4일 행정대집행 당시 발생한 부상자 수(경찰 포함).
44가구: 2007년 이주 당시 끝까지 남았던 대추리 원주민 가구 수.

김택균 이장님은 더위 속에서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시면서 때론 울컥한 목소리로 그 어두웠던 날을 묘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날 5월 4일 행정대집행을 하는데 밤을 새웠어요…. 중략…. 사실 총을 가지고 들어갔으면 여기에서 제2의 광주가 일어났었고 그런 일까지 벌어질 뻔했었어요…. 중략…. 이때 새벽 4시에 강폭이, 강폭이 한 300m가 넘어요. 한 2, 300명이 진짜 실전 훈련하는 것처럼 군인들이 배를 타고서는 도하해서 들어온 데도 있어요. 학교에선 사람들 비명 소리가 나고, 전화로 제가 인터뷰를 하루 종일 했는데 하루 종일 울었어요. 무서워서. 마을 안에 있는 게 겁이 나서 인터뷰하면서 사람 좀 살려달라고 하루 종일 울었던 게 기억이나.”

이주를 강행하려는 정부와 물러설 곳 없는 주민들의 대치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대화에서 폭력으로 치닫는 4년여의 세월 동안 주민들은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떠났고, 외부의 분열 공작은 연대를 와해시켰으며, 군경을 동원한 물리적 폭력은 주민들을 공포에 잠식시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의 투쟁은 ‘반미 투쟁’이자 ‘불순 세력의 선동’이라는 빨갱이 낙인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대추리는 사라졌고, 44가구만이 새로운 보금자리인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토지 사용권만 허가된 낯선 땅에서 주민들은 대출을 받아 집을 지어야 했고, 농사로 생계를 책임지던 주민들은 당장 농사지을 땅이 없어 공공근로와 같은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고 합니다.

‘대추리’라는 이름을 유지해 주겠다는 정부의 협상안은 오히려 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로 이주한 뒤, 대추리 정착민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요구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주민들은 마을을 ‘대추리 평화마을’이라 부르고 싶어 했지만, 행정구역상 이름은 ‘노와리’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 명칭 사용권이나 이정표, 안내판 표기 등을 두고 지자체 및 인근 마을과의 갈등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도로명 주소 전면 도입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대추리길’과 ‘대추안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지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장님의 정겨운 마을 소개가 끝난 뒤, 정성스레 차려진 로컬푸드로 점심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제철 식재료로 직접 차려낸 밥상은 아주 꿀맛이었지요.

식사 후에는 활동가들과 함께 어색함을 지우고 서로의 마음을 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활용한 ‘이름 빙고’ 게임을 하며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해 나갔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이런 놀이 과정을 통해 느슨했던 마음들은 금세 단단한 네트워크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마을의 향기를 담아내는 바질페스토 만들기 체험이었습니다.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하며 마을 텃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바질로 페스토를 만드는 과정은 아주 좋은 힐링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향긋한 바질 내음이 손끝에 배어들 때마다 대추리에서의 시간은 느리지만 더없이 깊고 진하게 흘러갔습니다.

떠나는 길, 손에 쥐여 주신 마을의 소출인 햇감자는 마을의 넉넉한 인심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대추리에서 보낸 하루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정성 어린 환대와 사람 냄새 가득한 온기로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대추리 평화마을의 체험은 다른 곳과 다릅니다. 2005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어느 날 뉴스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시위와 약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겠지'라며 무심히 넘겼던 20년 전의 저는 참으로 안일했습니다. 김택균 이장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마주한 그 새벽의 공포, 그리고 44가구가 지켜낸 공동체의 눈물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사수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2026년 오늘, 다시 찾은 대추리는 평화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황새울 들판에 묻힌 사람들의 기억과 낯선 땅에서 다시 싹을 틔운 주민들의 인내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연대와 인내, 그리고 아픈 희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평화가 부디 영원히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추리는 오늘날 '대추리 평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굳건히 남겨졌습니다.

공익활동가 주간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던 대추리 평화마을 견학. 그러나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 제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존재하는 부조리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과 공동체의 희생,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못 본 척 지나치는 차가운 시선들이 비로소 실감 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체험 관광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를 되새기며 저 또한 활동가로서 이 기록을 남기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익활동가 주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는 7월 3일 열리는 '공익활동가 희노애락 이야기 마당'과 7월 10일 진행되는 '공익활동가 활력회복지원(영화 모아나 관람)'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60510/8305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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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