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기획기사] 사회연대경제가 바꾸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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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도시 광명, 사회연대경제가 바꾸는 일상
함께 살기 위한 선택들 — 사회적경제·공정무역·지속가능관광·공유경제, 시민의 삶 속으로
· 평범한 엄마의 질문에서 시작된 일
2002년 겨울, 광명의 한 가정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환경호르몬과 공장식 축산의 비극을 마주한 것이다. 기계적으로 알을 낳는 닭과 좁은 우리에 갇힌 돼지들을 보며, 세 살 딸을 둔 엄마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누군가의 고통임을 통감했다. 한동안 먹먹한 마음으로 화면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먹는 게 결국은 나다." 라는 생각이 그를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협동조합을 알게 되면서 사회연대경제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10여 년의 생협 활동 끝에 지금은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를 이끌고 있다.
바로 박미정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장의 이야기다. 그의 출발점은 거창한 명분이나 대의가 아니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는 조용한 다짐이었다. 그 다짐이 지금 광명의 182개 사회연대경제기업을 품은 생태계의 씨앗이 됐다.
· '공익'은 어디서 오는가
공익(公益)이라는 말은 종종 국가나 제도의 언어처럼 들린다. 그런데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가 10여 년간 현장에서 증명해 온 것은 다르다. 공익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어디서 살 것인가.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대신 이웃과 나누는 마음. 여행지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골목 안 작은 가게를 찾는 발걸음. 이토록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모여 지구 반대편 농부의 삶을 지탱하고, 우리 동네의 생태계를 살리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자리가 된다.
유정란을 사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생산자들은 자연스럽게 닭을 다르게 키운다. 공정무역 커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생산지의 농부는 제값을 받는다. 박미정 센터장이 생협 활동 10년을 통해 몸으로 익힌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세상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믿음이다.
센터가 사회적경제·공정무역·지속가능관광·공유경제라는 네 가지 사업 영역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넷은 별개의 정책 사업이 아니다.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내 선택이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광명시에는 지금(2025년 기준) 182개의 사회연대경제기업이 있다. 사회적기업 17개, 협동조합 142개, 마을기업 7개, 자활기업 6개. 62개의 기업이 자리를 잡은 소하동을 필두로 광명동·하안동·철산동·학온동·일직동까지 지도 위에 점을 찍으면 광명 시내 곳곳이 촘촘하게 채워진다.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들 곁을 이 기업들이 지키고 있다. 청각장애인부터 경력 보유 여성,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소외된 이들과 발을 맞춘다. 박 센터장은 이들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함께 뛰는 기업들"이라 말한다.
광명 내 사회연대경제기업 매출 1위이자 장애인 고용 1위인 '월드CNS'가 그 대표적인 예다. CCTV 기술 기반의 이 기업은 청각장애인 직원과 어르신을 포함해 취약계층을 30% 이상 고용하며 창립 9주년을 맞았다. 매출이 최고조일 때 50억 원을 기록했고, 2024년에만 지역사회에 3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미션 선언문이 걸려 있다. "우리는 취약계층 30%를 고용하고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숫자가 아니라 가치를 먼저 내세우는 기업이다.
연 매출 5,000만 원으로 출발해 경력 보유 여성 3명을 고용하며 5억 원대로 성장한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들을 이야기할 때 박 센터장의 목소리는 달라진다. "이런 기업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숫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럼에도 이 길은 쉽지 않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면서도 일반 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같은 볼펜을 만들어도 노동 숙련도에 차이가 있고, 이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박 센터장은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두 번은 윤리적 소비를 해주지만 매번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시민에게 호소합니다. 이 기업들을 함께 키워야 할 이웃으로 봐달라고요."
· 커피 한 잔의 윤리학 — 공정무역이 바꾸는 것
광명시는 현재 공정무역 캐시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이 광명시 인증 공정무역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결제 금액의 10%를 광명사랑화폐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는 혜택이고,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대가이며, 지역 경제에는 순환이다.
올해부터는 공정무역 가게에 지역화폐 사용 한도(매출 30억 원까지)도 열렸다. 공정무역 인증 카페 '가우디'가 그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매장 중 하나다. 마스코바도 비정제 설탕으로 만든 휘낭시에와 마들렌을 선보이며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준비 중인 이 카페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 지역 주민들이 모여 사회적 가치를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이 제도가 겨냥하는 것은 단순한 캐시백 숫자가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커피를 키운 농부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까"라며 잠시 멈춰 서는 것. 초콜릿 포장지를 살피며 "어린아이의 고통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를 헤아리는 마음. 공정무역은 바로 그 '다정한 멈춤'을 시민의 일상 속에 들여놓는 일이다.
올해 광명시가 준비한 '청소년 공정무역 학교'와 '공정무역 포트나잇'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선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각을 익히고, 그 마음을 소비의 습관으로 연결하는 시민들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윤리적 선택이 상식이 되는 도시, 광명은 지금 그 건강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정직하게 나아가고 있다.
· 2026년, 광명이 시도하는 가장 큰 실험
올해 광명시가 가장 공들이는 과제는 '통합돌봄'이다. 3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된 이 사업은 식사 제공, 어르신 돌봄 동행, 청소, 심리 상담, 이동 동행, 주거 개선 등의 영역에서 15개 이상의 사회연대경제기업이 공공 서비스의 실질적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다. 전국 최초 조례로 제도화한 모델이다.
돌봄은 오랫동안 가족,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국가가 일부를 맡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버텨야 했던 구조였다. 광명의 실험은 여기에 '지역 공동체'라는 세 번째 주체를 더한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그 돌봄이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연결되고,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삶도 나아지는 구조다. 돌봄이 희생이 아니라 연대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박 센터장은 "광명형 돌봄 모델"이라고 불렀다. 전국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 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학교다
박 센터장에게 협동조합은 10년의 세월 끝에 깨달은 '민주주의 학교'다. 어려운 시절엔 십시일반 힘을 합치지만,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 '나의 지분'이라는 장벽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여도에 따른 차등 배분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민주적 평등 사이의 충돌. 이러한 인간적인 갈등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협동조합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해법은 돌고 돌아 다시 '교육'으로 귀결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우리의 지향점은 어디인지 묻고 답하는 초심을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국 3만여 개의 협동조합 중 절반 이상이 침체에 빠진 지금의 현주소는, 가치 공유가 결여된 협동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센터의 역할은 단순히 기업 설립을 지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민간이 주도하여 기업 간 컨설팅과 협업을 이루고, 이를 통해 자생적인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지자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민간 자립 역량'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박 센터장이 임기 내 완수하고자 하는 최우선 과업이다.
· 시민과 기업이 함께 만드는 공간 —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
올 상반기, 하안동 305-5 일대에 새 공간이 문을 연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연면적 약 1,437㎡ 규모의 광명시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다. 1층 개방형 카페, 2층 팝업스토어, 3층 체험 프로그램, 4층 문화 공연·협업 공간으로 설계됐다. 시비 100%로 조성되는 이 공간은 처음부터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됐다.
문화와 경제가 한 지붕 아래 조화롭게 만나고, 시민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주체적인 참여자로 서는 공간. 박 센터장은 이곳을 "시민이 진정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센터"로 일궈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연대경제의 가치를 믿는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닌, 새로운 연대가 싹트는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인터뷰 — 박미정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장
Q1. 공익 활동과 사회연대경제, 어떻게 연결됩니까?
"공익 활동과 사회연대경제는 결국 같은 가치에서 출발합니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를 위해, 오늘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러한 지향 자체가 공익이며, 이를 동력 삼아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사회연대경제입니다. 저는 생협 활동을 통해 사소한 소비 하나에도 세상을 바꿀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공익과 일상은 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Q2. 광명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유독 성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했지만, 본질적인 동력은 결국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142개의 협동조합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직접 일구고 운영하는 조직들로, 그만큼 견고하게 뿌리내렸음을 의미합니다. 행정은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토양을 다지는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비록 광명시 전체 사업자 2만 6천여 개 중 0.7%라는 작은 비중이지만, 그 0.7%가 지역사회에 퍼뜨리는 가치와 울림은 그 어떤 수치보다 크다고 믿습니다."
Q3. 통합돌봄에 사회연대경제기업이 참여하는 것,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돌봄은 가장 인간적인 공익 활동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돌봄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 서 있곤 했었습니다. 이번에 광명이 시도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가 돌봄의 주체가 되는 구조입니다. 사회연대경제기업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것이 취약계층 일자리와 연결되고,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삶의 질도 높아집니다. 돌봄이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연대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곳, 그곳이 바로 광명입니다."
Q4. 협동조합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결국 교육이 답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행정가라도 협동조합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그 깊은 고충을 알기 어렵습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 공동의 가치보다 개인의 지분을 앞세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저도 10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협동조합이 왜 '민주주의 학교'라 불리는지 깨달았습니다."
Q5. 공익 활동가들과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나눔과 연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성. 공익 활동가분들이 현장에서 땀 흘리며 지켜온 이 소중한 마음들은 사회연대경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꼭 닮아 있습니다. 곧 문을 열 '광명시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에 편안하게 들러주세요. 우리 곁의 이웃 기업들을 직접 만나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 연결되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합니다. 사회연대경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여러분의 일상 속에 이미 녹아 있으니까요."
·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인터뷰 끝 무렵, 박미정 센터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역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들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다. 청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는 기업, 경력이 끊긴 여성에게 다시 출발선을 내어준 기업, 그룹홈 청소년의 손을 잡아준 기업들이 광명 곳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광명 전체 사업자 중 0.7%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숫자가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온기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2026년, 광명은 또 한 걸음 나아간다. 통합돌봄으로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시민과 기업이 일상에서 조우하며, 공정무역과 공유경제가 시민의 다정한 습관이 되는 도시. 이미 인도에서 벤치마킹을 올 만큼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이 되었고, '300개 기업'이라는 원대한 꿈도 한 걸음씩 선명해지고 있다.
박 센터장이 꿈꾸는 내일은 '함께 걷는 발걸음'에 있다. 어떤 커피를 마실지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부터 이웃의 안부를 묻는 다정함까지,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공익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 있다. 소유보다 나눔을, 속도보다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광명의 선택은 단순한 정책이 아닌 삶의 태도다. 광명은 지금 그 품격 있는 변화를 향해 묵묵히, 그러나 쉼 없이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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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함께 살기 위한 선택들 — 사회적경제·공정무역·지속가능관광·공유경제, 시민의 삶 속으로
· 평범한 엄마의 질문에서 시작된 일
2002년 겨울, 광명의 한 가정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환경호르몬과 공장식 축산의 비극을 마주한 것이다. 기계적으로 알을 낳는 닭과 좁은 우리에 갇힌 돼지들을 보며, 세 살 딸을 둔 엄마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누군가의 고통임을 통감했다. 한동안 먹먹한 마음으로 화면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먹는 게 결국은 나다." 라는 생각이 그를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협동조합을 알게 되면서 사회연대경제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10여 년의 생협 활동 끝에 지금은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를 이끌고 있다.
바로 박미정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장의 이야기다. 그의 출발점은 거창한 명분이나 대의가 아니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는 조용한 다짐이었다. 그 다짐이 지금 광명의 182개 사회연대경제기업을 품은 생태계의 씨앗이 됐다.
· '공익'은 어디서 오는가
공익(公益)이라는 말은 종종 국가나 제도의 언어처럼 들린다. 그런데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가 10여 년간 현장에서 증명해 온 것은 다르다. 공익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어디서 살 것인가.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대신 이웃과 나누는 마음. 여행지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골목 안 작은 가게를 찾는 발걸음. 이토록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모여 지구 반대편 농부의 삶을 지탱하고, 우리 동네의 생태계를 살리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자리가 된다.
유정란을 사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생산자들은 자연스럽게 닭을 다르게 키운다. 공정무역 커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생산지의 농부는 제값을 받는다. 박미정 센터장이 생협 활동 10년을 통해 몸으로 익힌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세상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믿음이다.
센터가 사회적경제·공정무역·지속가능관광·공유경제라는 네 가지 사업 영역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넷은 별개의 정책 사업이 아니다.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내 선택이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광명시에는 지금(2025년 기준) 182개의 사회연대경제기업이 있다. 사회적기업 17개, 협동조합 142개, 마을기업 7개, 자활기업 6개. 62개의 기업이 자리를 잡은 소하동을 필두로 광명동·하안동·철산동·학온동·일직동까지 지도 위에 점을 찍으면 광명 시내 곳곳이 촘촘하게 채워진다.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들 곁을 이 기업들이 지키고 있다. 청각장애인부터 경력 보유 여성,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소외된 이들과 발을 맞춘다. 박 센터장은 이들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함께 뛰는 기업들"이라 말한다.
광명 내 사회연대경제기업 매출 1위이자 장애인 고용 1위인 '월드CNS'가 그 대표적인 예다. CCTV 기술 기반의 이 기업은 청각장애인 직원과 어르신을 포함해 취약계층을 30% 이상 고용하며 창립 9주년을 맞았다. 매출이 최고조일 때 50억 원을 기록했고, 2024년에만 지역사회에 3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미션 선언문이 걸려 있다. "우리는 취약계층 30%를 고용하고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숫자가 아니라 가치를 먼저 내세우는 기업이다.
연 매출 5,000만 원으로 출발해 경력 보유 여성 3명을 고용하며 5억 원대로 성장한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들을 이야기할 때 박 센터장의 목소리는 달라진다. "이런 기업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숫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럼에도 이 길은 쉽지 않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면서도 일반 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같은 볼펜을 만들어도 노동 숙련도에 차이가 있고, 이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박 센터장은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두 번은 윤리적 소비를 해주지만 매번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시민에게 호소합니다. 이 기업들을 함께 키워야 할 이웃으로 봐달라고요."
· 커피 한 잔의 윤리학 — 공정무역이 바꾸는 것
광명시는 현재 공정무역 캐시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이 광명시 인증 공정무역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결제 금액의 10%를 광명사랑화폐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는 혜택이고,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대가이며, 지역 경제에는 순환이다.
올해부터는 공정무역 가게에 지역화폐 사용 한도(매출 30억 원까지)도 열렸다. 공정무역 인증 카페 '가우디'가 그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매장 중 하나다. 마스코바도 비정제 설탕으로 만든 휘낭시에와 마들렌을 선보이며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준비 중인 이 카페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 지역 주민들이 모여 사회적 가치를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이 제도가 겨냥하는 것은 단순한 캐시백 숫자가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커피를 키운 농부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까"라며 잠시 멈춰 서는 것. 초콜릿 포장지를 살피며 "어린아이의 고통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를 헤아리는 마음. 공정무역은 바로 그 '다정한 멈춤'을 시민의 일상 속에 들여놓는 일이다.
올해 광명시가 준비한 '청소년 공정무역 학교'와 '공정무역 포트나잇'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선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각을 익히고, 그 마음을 소비의 습관으로 연결하는 시민들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윤리적 선택이 상식이 되는 도시, 광명은 지금 그 건강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정직하게 나아가고 있다.
· 2026년, 광명이 시도하는 가장 큰 실험
올해 광명시가 가장 공들이는 과제는 '통합돌봄'이다. 3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된 이 사업은 식사 제공, 어르신 돌봄 동행, 청소, 심리 상담, 이동 동행, 주거 개선 등의 영역에서 15개 이상의 사회연대경제기업이 공공 서비스의 실질적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다. 전국 최초 조례로 제도화한 모델이다.
돌봄은 오랫동안 가족,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국가가 일부를 맡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버텨야 했던 구조였다. 광명의 실험은 여기에 '지역 공동체'라는 세 번째 주체를 더한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그 돌봄이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연결되고,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삶도 나아지는 구조다. 돌봄이 희생이 아니라 연대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박 센터장은 "광명형 돌봄 모델"이라고 불렀다. 전국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 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학교다
박 센터장에게 협동조합은 10년의 세월 끝에 깨달은 '민주주의 학교'다. 어려운 시절엔 십시일반 힘을 합치지만,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 '나의 지분'이라는 장벽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여도에 따른 차등 배분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민주적 평등 사이의 충돌. 이러한 인간적인 갈등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협동조합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해법은 돌고 돌아 다시 '교육'으로 귀결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우리의 지향점은 어디인지 묻고 답하는 초심을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국 3만여 개의 협동조합 중 절반 이상이 침체에 빠진 지금의 현주소는, 가치 공유가 결여된 협동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센터의 역할은 단순히 기업 설립을 지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민간이 주도하여 기업 간 컨설팅과 협업을 이루고, 이를 통해 자생적인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지자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민간 자립 역량'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박 센터장이 임기 내 완수하고자 하는 최우선 과업이다.
· 시민과 기업이 함께 만드는 공간 —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
올 상반기, 하안동 305-5 일대에 새 공간이 문을 연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연면적 약 1,437㎡ 규모의 광명시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다. 1층 개방형 카페, 2층 팝업스토어, 3층 체험 프로그램, 4층 문화 공연·협업 공간으로 설계됐다. 시비 100%로 조성되는 이 공간은 처음부터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됐다.
문화와 경제가 한 지붕 아래 조화롭게 만나고, 시민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주체적인 참여자로 서는 공간. 박 센터장은 이곳을 "시민이 진정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센터"로 일궈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연대경제의 가치를 믿는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닌, 새로운 연대가 싹트는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인터뷰 — 박미정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장
Q1. 공익 활동과 사회연대경제, 어떻게 연결됩니까?
"공익 활동과 사회연대경제는 결국 같은 가치에서 출발합니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를 위해, 오늘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러한 지향 자체가 공익이며, 이를 동력 삼아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사회연대경제입니다. 저는 생협 활동을 통해 사소한 소비 하나에도 세상을 바꿀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공익과 일상은 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Q2. 광명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유독 성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했지만, 본질적인 동력은 결국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142개의 협동조합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직접 일구고 운영하는 조직들로, 그만큼 견고하게 뿌리내렸음을 의미합니다. 행정은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토양을 다지는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비록 광명시 전체 사업자 2만 6천여 개 중 0.7%라는 작은 비중이지만, 그 0.7%가 지역사회에 퍼뜨리는 가치와 울림은 그 어떤 수치보다 크다고 믿습니다."
Q3. 통합돌봄에 사회연대경제기업이 참여하는 것,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돌봄은 가장 인간적인 공익 활동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돌봄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 서 있곤 했었습니다. 이번에 광명이 시도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가 돌봄의 주체가 되는 구조입니다. 사회연대경제기업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것이 취약계층 일자리와 연결되고,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삶의 질도 높아집니다. 돌봄이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연대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곳, 그곳이 바로 광명입니다."
Q4. 협동조합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결국 교육이 답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행정가라도 협동조합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그 깊은 고충을 알기 어렵습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 공동의 가치보다 개인의 지분을 앞세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저도 10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협동조합이 왜 '민주주의 학교'라 불리는지 깨달았습니다."
Q5. 공익 활동가들과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나눔과 연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성. 공익 활동가분들이 현장에서 땀 흘리며 지켜온 이 소중한 마음들은 사회연대경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꼭 닮아 있습니다. 곧 문을 열 '광명시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에 편안하게 들러주세요. 우리 곁의 이웃 기업들을 직접 만나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 연결되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합니다. 사회연대경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여러분의 일상 속에 이미 녹아 있으니까요."
·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인터뷰 끝 무렵, 박미정 센터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역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들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다. 청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는 기업, 경력이 끊긴 여성에게 다시 출발선을 내어준 기업, 그룹홈 청소년의 손을 잡아준 기업들이 광명 곳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광명 전체 사업자 중 0.7%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숫자가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온기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2026년, 광명은 또 한 걸음 나아간다. 통합돌봄으로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사회연대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시민과 기업이 일상에서 조우하며, 공정무역과 공유경제가 시민의 다정한 습관이 되는 도시. 이미 인도에서 벤치마킹을 올 만큼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이 되었고, '300개 기업'이라는 원대한 꿈도 한 걸음씩 선명해지고 있다.
박 센터장이 꿈꾸는 내일은 '함께 걷는 발걸음'에 있다. 어떤 커피를 마실지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부터 이웃의 안부를 묻는 다정함까지,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공익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 있다. 소유보다 나눔을, 속도보다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광명의 선택은 단순한 정책이 아닌 삶의 태도다. 광명은 지금 그 품격 있는 변화를 향해 묵묵히, 그러나 쉼 없이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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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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