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6│우리가 먹는 발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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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경고 6. 우리가 먹는 발효의 시간』
1. 발효의 향기
어린 시절 필자의 막내 이모댁에 가면 메주를 띄우는 방이 따로 있었습니다. 파리가 앵앵거리고 꼬릿한 냄새가 나던 그 방을 이모는 집 안의 어느 방보다도 살뜰히 보살피셨습니다. 온도를 맞추고 통풍하느라 창문을 여닫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농사지은 콩을 수확해 고르고, 잘 말린 뒤 물에 불립니다. 그리고 또 콩을 골라냅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이 장을 발효하는 일이 일 년 내내 먹을 식탁의 기초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르고 고른 콩을 푹 쪄내어 손가락으로 쓱 문질러 으깨질 정도가 되면 메주틀에 꾹꾹 눌러 담아 모양을 잡고 말립니다. 아침저녁 군불을 때어 온도를 맞추고 통풍을 위해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합니다. 가끔은 해를 쬐게 하려고 자리를 옮기기도 하지요. 겨우내 아기 돌보듯 살핍니다.
이렇게 잘 말려 발효된 메주로 다시 장을 담급니다. 그리고 장이 발효되는 시간 역시 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장독에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은 계절을 따라 계속됩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장은 그 집안 식문화의 몇 해를 지탱하는 주춧돌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 과정은 지루하고 고된 수고를 필요로 하며, 때로는 불쾌한 냄새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뿐만이 아닙니다. 김치나 젓갈 같은 발효 음식 역시 모두 시간이 만들어 내는 음식입니다.
이러한 발효의 과정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젓갈’입니다.
멸치잡이 배가 들어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물에 가득 걸린 멸치를 털어 냅니다. 한편에서는 솥을 걸고 멸치를 삶아 말릴 준비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순물을 골라내 소금을 쳐서 통에 담습니다. 어른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젓갈 통은 장정 두세 명이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을 만큼 묵직합니다.
그렇게 담근 젓갈 통은 토굴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노동한 만큼 나누어 가졌습니다. 예전 어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젓갈 담그기 풍경이었습니다.
발효는 기다림과 노동의 흔적입니다. 단순한 저장 방식을 넘어 계절과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음식입니다.
2. 사라진 기다림의 부엌
도시화를 거친 우리의 삶은 이제 주방에서 더 이상 발효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장독대와 토굴은 사라지고, 발효 음식은 집에서 담그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장류와 젓갈을 집에서 담가 먹는 집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일과 가사가 분리되면서 가사 노동의 가치는 점점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시간과 손이 많이 필요한 식사 준비는 어느 순간 비효율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 도시 생활의 리듬, 소가족과 1인 가구의 확대는 우리에게 빠르고 간편한 식사를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발효의 시간은 생활 속에서 밀려나고, 대신 즉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발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던 발효는 이제 공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발효된 음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트의 냉장 코너에는 수십 종류의 김치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지역 이름을 붙인 김치부터 숙성도를 표시한 김치까지 다양합니다. 장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은 계절과 손길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장독대에서 몇 달, 몇 해를 기다려야 했던 음식들이 이제는 기다림 없이 포장된 채 진열대에 놓여 있습니다.
요즘에는 발효 시간을 조절하거나 단축하는 기술도 널리 사용됩니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설비, 선택된 미생물 종균, 균일한 원료 관리 덕분에 발효는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맛의 발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발효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의 발효가 계절과 사람의 시간을 담은 음식이었다면, 지금의 발효는 시간을 압축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 대신 편리함이, 공동체 대신 생산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먹는 발효 음식 속에 어떤 시간이 담겨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3. 제대로 발효된 음식인가
발효 음식이란 무엇일까요.
발효 음식은 미생물, 즉 효모와 곰팡이, 유산균이 식재료의 성분을 분해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입니다. 이 과정은 음식의 저장 기간을 늘리고 소화 흡수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또한 발효를 거치며 식재료의 맛과 질감, 향이 변화해 전혀 다른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발효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만드는 음식입니다. 며칠에서 몇 주, 때로는 몇 달 동안 적당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미생물이 증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효는 단순한 저장 기술이 아니라 조리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발효 음식은 어떨까요.
여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것이 진짜 발효된 음식인가 하는 점입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발효 식품도 기본적으로는 미생물의 활동을 거칩니다. 하지만 판매되는 방식과 유통 과정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살균, 소분 포장, 장기 보관 방식 등은 발효 과정을 거친 음식일지라도 그 안의 미생물이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발효 음식은 발효된 음식일 수는 있지만 살아 있는 발효 음식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냉장 김치나 무가당 요거트, 일부 비살균 발효 식품을 제외하면 많은 제품은 이미 발효가 멈춘 상태로 식탁에 올라옵니다. 발효의 결과물은 남아 있지만 발효의 과정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4. 발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효의 깊은 맛과 가치는 이제 우리의 식탁에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맛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 기다림 대신 빠른 방식을 선택하면서도, 여전히 좋은 발효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발효에 기꺼이 돈을 더 쓰기도 합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장류나 오래 숙성한 김치, 자연 발효를 내세운 식품들은 일반 발효 식품보다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음식을 찾습니다. 발효가 단순한 조리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맛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식탁에는 두 가지 발효가 함께 올라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기술이 시간을 단축해 만든 발효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시간을 들여 만들어지는 발효입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하면서도 동시에 오래된 발효를 그리워합니다.
발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합니다. 편리함을 찾을지, 더 깊은 가치를 지킬지.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우리의 식탁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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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1. 발효의 향기
어린 시절 필자의 막내 이모댁에 가면 메주를 띄우는 방이 따로 있었습니다. 파리가 앵앵거리고 꼬릿한 냄새가 나던 그 방을 이모는 집 안의 어느 방보다도 살뜰히 보살피셨습니다. 온도를 맞추고 통풍하느라 창문을 여닫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농사지은 콩을 수확해 고르고, 잘 말린 뒤 물에 불립니다. 그리고 또 콩을 골라냅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이 장을 발효하는 일이 일 년 내내 먹을 식탁의 기초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르고 고른 콩을 푹 쪄내어 손가락으로 쓱 문질러 으깨질 정도가 되면 메주틀에 꾹꾹 눌러 담아 모양을 잡고 말립니다. 아침저녁 군불을 때어 온도를 맞추고 통풍을 위해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합니다. 가끔은 해를 쬐게 하려고 자리를 옮기기도 하지요. 겨우내 아기 돌보듯 살핍니다.
이렇게 잘 말려 발효된 메주로 다시 장을 담급니다. 그리고 장이 발효되는 시간 역시 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장독에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은 계절을 따라 계속됩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장은 그 집안 식문화의 몇 해를 지탱하는 주춧돌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 과정은 지루하고 고된 수고를 필요로 하며, 때로는 불쾌한 냄새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뿐만이 아닙니다. 김치나 젓갈 같은 발효 음식 역시 모두 시간이 만들어 내는 음식입니다.
이러한 발효의 과정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젓갈’입니다.
멸치잡이 배가 들어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물에 가득 걸린 멸치를 털어 냅니다. 한편에서는 솥을 걸고 멸치를 삶아 말릴 준비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순물을 골라내 소금을 쳐서 통에 담습니다. 어른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젓갈 통은 장정 두세 명이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을 만큼 묵직합니다.
그렇게 담근 젓갈 통은 토굴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노동한 만큼 나누어 가졌습니다. 예전 어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젓갈 담그기 풍경이었습니다.
발효는 기다림과 노동의 흔적입니다. 단순한 저장 방식을 넘어 계절과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음식입니다.
2. 사라진 기다림의 부엌
도시화를 거친 우리의 삶은 이제 주방에서 더 이상 발효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장독대와 토굴은 사라지고, 발효 음식은 집에서 담그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장류와 젓갈을 집에서 담가 먹는 집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일과 가사가 분리되면서 가사 노동의 가치는 점점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시간과 손이 많이 필요한 식사 준비는 어느 순간 비효율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 도시 생활의 리듬, 소가족과 1인 가구의 확대는 우리에게 빠르고 간편한 식사를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발효의 시간은 생활 속에서 밀려나고, 대신 즉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발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던 발효는 이제 공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발효된 음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트의 냉장 코너에는 수십 종류의 김치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지역 이름을 붙인 김치부터 숙성도를 표시한 김치까지 다양합니다. 장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은 계절과 손길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장독대에서 몇 달, 몇 해를 기다려야 했던 음식들이 이제는 기다림 없이 포장된 채 진열대에 놓여 있습니다.
요즘에는 발효 시간을 조절하거나 단축하는 기술도 널리 사용됩니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설비, 선택된 미생물 종균, 균일한 원료 관리 덕분에 발효는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맛의 발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발효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의 발효가 계절과 사람의 시간을 담은 음식이었다면, 지금의 발효는 시간을 압축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 대신 편리함이, 공동체 대신 생산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먹는 발효 음식 속에 어떤 시간이 담겨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3. 제대로 발효된 음식인가
발효 음식이란 무엇일까요.
발효 음식은 미생물, 즉 효모와 곰팡이, 유산균이 식재료의 성분을 분해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입니다. 이 과정은 음식의 저장 기간을 늘리고 소화 흡수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또한 발효를 거치며 식재료의 맛과 질감, 향이 변화해 전혀 다른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발효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만드는 음식입니다. 며칠에서 몇 주, 때로는 몇 달 동안 적당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미생물이 증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효는 단순한 저장 기술이 아니라 조리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발효 음식은 어떨까요.
여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것이 진짜 발효된 음식인가 하는 점입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발효 식품도 기본적으로는 미생물의 활동을 거칩니다. 하지만 판매되는 방식과 유통 과정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살균, 소분 포장, 장기 보관 방식 등은 발효 과정을 거친 음식일지라도 그 안의 미생물이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발효 음식은 발효된 음식일 수는 있지만 살아 있는 발효 음식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냉장 김치나 무가당 요거트, 일부 비살균 발효 식품을 제외하면 많은 제품은 이미 발효가 멈춘 상태로 식탁에 올라옵니다. 발효의 결과물은 남아 있지만 발효의 과정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4. 발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효의 깊은 맛과 가치는 이제 우리의 식탁에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맛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 기다림 대신 빠른 방식을 선택하면서도, 여전히 좋은 발효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발효에 기꺼이 돈을 더 쓰기도 합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장류나 오래 숙성한 김치, 자연 발효를 내세운 식품들은 일반 발효 식품보다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음식을 찾습니다. 발효가 단순한 조리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맛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식탁에는 두 가지 발효가 함께 올라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기술이 시간을 단축해 만든 발효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시간을 들여 만들어지는 발효입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하면서도 동시에 오래된 발효를 그리워합니다.
발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합니다. 편리함을 찾을지, 더 깊은 가치를 지킬지.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우리의 식탁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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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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