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넓은세상작은도서관 '변방에서 부모공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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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모처럼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마을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도덕산과 가림산을 이웃하고 있는 하안5단지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넓은세상작은도서관’(이하 ‘넓세도서관’)이 있지요. 우연히 넓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2025 변방에서 부모공부 교육토론회’를 알리는 홍보지(웹자보)를 접했답니다. 4차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엄기호 강사와 #김주대 강사가 있더군요. 만나보고 싶었던 강사들이어서, 우선 웹자보를 저의 장바구니(다운로드)에 담아 놓았답니다. 일정을 체크했고요. 마침 아이 엄마도 해당 프로그램 참여를 제게 권유하더라고요.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고 세상도 좋아졌으니, 저도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톤다운’ 같은 것이지요. 느긋한 일상의 리듬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6월10일(금) 오전 10시 넓세도서관에서 진행된 교육토론회 1차시 강의와 만남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참석자들도 진솔하고 진지했습니다. 그만큼 교육의 문제는 우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지요. 더욱이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염두에 두고 강의를 듣고, 스스로의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였으니까요. 저도 같은 입장이고,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와 교육 문제 중 어떤 문제가 더 우선순위에 있을까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만큼 어려운 문제가 교육 문제이지요. 이날 강사로 참석한 엄기호 선생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제가 나름대로 이해한 방식을 통해 넓세도서관의 교육토론회 1차시 현장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우선 교육에 대한 정의가 중요하겠지요.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에 걸친 이야기 마당에서 우리가 나눌 주제가 교육이라면 교육이 무엇이고, 참석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교육이 무엇일까요. 교육이 신분상승의 수단일까요. 사회학적으로 계급(계층)이동의 수단일까요. 계급(계층, 신분)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수단 혹은 사다리가 교육이라면,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과거 어른들은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신분 상승이 가능한 경우를 빗대어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했지요. 아마 최근에 대통령이 된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죠. 이재명 대통령처럼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그렇게 될 확률, 가능성은 과거 우리 어른 세대, 혹은 선배 세대에 비하면 훨씬 줄었다고 볼 수 있죠.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엄기호 선생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나요? 동의하나요? 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교육 사다리를 타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사회라고 봅니다.
그럼 교육은 무엇일까요. 왜 불가능한 사다리라고 생각하는데 올라타려고 하거나, 올라타라고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평균은 가야지 하는 불안이 있다는 것이죠. 일단 ‘평타는 쳐야지. 중간은 가야지’하는 ‘평균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평균치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에 미치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여기고,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주류적인 생각 아닐까요. 이런 사회이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하는 푸념을 달고 살지 않나요. 혹 주변에 그럼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 아닐까요. 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교육토론회이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대학 입시를 논하거나 더 좋은 진학을 논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더 다가가거나,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교육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요. 신분상승도 어렵다는 사다리에서 왜 우리는 내려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다리로 갈아타거나, 다른 수단으로 환승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이 말은 곧 교육에 대한 이해, 혹은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교육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사회)를 바라보는 ‘창’으로 보자는 것이지요. ‘창’이라는 것은 밖을 바라보는 것이므로, ‘세계관’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세계관)을 키웁니다.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의 연장선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능력)을 갖게 되면, 우리는 단순한 현실의 만족을 넘어서서, 좀 더 행복한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이죠. 비록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 않아서, 그에 따른 불안이 엄습해오고, 현실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이끈다고 해도 우리는 어쩌면 더 큰 만족, 행복을 위해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역설’,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야기는 ‘서사’(내러티브)입니다. 사회(세계)는 서사의 집합체입니다. 개인도 또 다른 서사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한 개인도,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도, 그리고 사회의 집합체인 세계도 다층적이고 복잡한 서사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읽고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읽기 능력’이 수반됩니다. 그 역량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행복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다만, 이러한 공부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 환경 등 읽기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가령 ‘쇼츠’와 같은 짧은 동영상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복잡한 것을 이해(공부)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쉽고 단편적인 것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읽지 않고 보는 ‘구경꾼’의 지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유투브 시청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즉 공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지적이고, 문제의식입니다.
나아가 한국사회라고 하는 현실에서, 당장 입시를 앞두고 공부하는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로서 강사가 제시한 문제제기를 어떻게 수렴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는 질문이 당연히 수반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엄기호 강사는 최선을 다해 질문과 답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 할 답까지 제시해줄 수는 없습니다. 달라진 공부 환경에서 변화하고 적응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각 자의 몫, 우리 사회의 몫입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또한 사다리 교육의 허상 혹은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했다면, 아이들을 ‘묻지마식’으로 그 대열에 몰아넣기보다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대학을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의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와 인생의 다층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같이 그 세계를 펼쳐가거나 만들어 가자고 제안해보자는 것이지요. 물론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마당, 토론회라고 하는 장을 펼친 것이겠지요.
그랬습니다. 이날 이야기 마당에 참여한 사람들은 만족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각 자 개인의 세계에 들어가면, 각 자의 읽기 방식(!)에 따라 만족과 불만족의 스펙트럼이 나뉠 것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부여잡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사다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보려는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맞아 더 이상 사다리는 아니지’ 하며, 공부에 대한 개념과 방향을 전환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엄기호 선생의 강의와 질의응답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저마다의 공감 포인트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관한 정인애 넓세도서관 관장님은 넓세도서관이 ‘긴 고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엄기호 선생은 ‘긴 고리’라는 단어를 통해 공부가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긴 고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읽기 역량, 공부 역량이었지요. 넓세도서관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그러한 읽기 역량, 공부 역량을 채워주고자 긴 고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넓세도서관이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이번 공부 토론회를 마련한 것도, 변방에서 나와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긴 고리’의 접근 전략이라고 봐야겠지요. 꽉 채운 강연과 질의응답, 그리고 패널 토론을 통한 토론의 심화, 나아가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청취하려는 진행은 참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앞으로 남은 김주대 시인의 2회차 강연과 토론(6/20 오전 10시), 3회차(6/27 오전 10시)와 4회차(7/4 오전 10시) 워크숍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엄기호 선생은 사회학자이고, 많은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한국사회 교육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죠. 넓세도서관 이용자들도 만만치 않은 지성들이죠. 당연히 당일 3시간 동안 진행된 이야기들을 담기에 이 지면은 극히 일부만 담을 수밖에 없고, 또한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궁금한 이야기는 넓세도서관 홈페이지 후기를 파악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홍보기자단 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모처럼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마을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도덕산과 가림산을 이웃하고 있는 하안5단지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넓은세상작은도서관’(이하 ‘넓세도서관’)이 있지요. 우연히 넓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2025 변방에서 부모공부 교육토론회’를 알리는 홍보지(웹자보)를 접했답니다. 4차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엄기호 강사와 #김주대 강사가 있더군요. 만나보고 싶었던 강사들이어서, 우선 웹자보를 저의 장바구니(다운로드)에 담아 놓았답니다. 일정을 체크했고요. 마침 아이 엄마도 해당 프로그램 참여를 제게 권유하더라고요.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고 세상도 좋아졌으니, 저도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톤다운’ 같은 것이지요. 느긋한 일상의 리듬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6월10일(금) 오전 10시 넓세도서관에서 진행된 교육토론회 1차시 강의와 만남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참석자들도 진솔하고 진지했습니다. 그만큼 교육의 문제는 우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지요. 더욱이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염두에 두고 강의를 듣고, 스스로의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였으니까요. 저도 같은 입장이고,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와 교육 문제 중 어떤 문제가 더 우선순위에 있을까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만큼 어려운 문제가 교육 문제이지요. 이날 강사로 참석한 엄기호 선생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제가 나름대로 이해한 방식을 통해 넓세도서관의 교육토론회 1차시 현장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우선 교육에 대한 정의가 중요하겠지요.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에 걸친 이야기 마당에서 우리가 나눌 주제가 교육이라면 교육이 무엇이고, 참석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교육이 무엇일까요. 교육이 신분상승의 수단일까요. 사회학적으로 계급(계층)이동의 수단일까요. 계급(계층, 신분)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수단 혹은 사다리가 교육이라면,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과거 어른들은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신분 상승이 가능한 경우를 빗대어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했지요. 아마 최근에 대통령이 된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죠. 이재명 대통령처럼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그렇게 될 확률, 가능성은 과거 우리 어른 세대, 혹은 선배 세대에 비하면 훨씬 줄었다고 볼 수 있죠.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엄기호 선생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나요? 동의하나요? 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교육 사다리를 타고 신분상승을 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사회라고 봅니다.
그럼 교육은 무엇일까요. 왜 불가능한 사다리라고 생각하는데 올라타려고 하거나, 올라타라고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평균은 가야지 하는 불안이 있다는 것이죠. 일단 ‘평타는 쳐야지. 중간은 가야지’하는 ‘평균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평균치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에 미치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여기고,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주류적인 생각 아닐까요. 이런 사회이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하는 푸념을 달고 살지 않나요. 혹 주변에 그럼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 아닐까요. 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교육토론회이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대학 입시를 논하거나 더 좋은 진학을 논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더 다가가거나,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교육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요. 신분상승도 어렵다는 사다리에서 왜 우리는 내려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다리로 갈아타거나, 다른 수단으로 환승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이 말은 곧 교육에 대한 이해, 혹은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교육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사회)를 바라보는 ‘창’으로 보자는 것이지요. ‘창’이라는 것은 밖을 바라보는 것이므로, ‘세계관’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세계관)을 키웁니다.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의 연장선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능력)을 갖게 되면, 우리는 단순한 현실의 만족을 넘어서서, 좀 더 행복한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이죠. 비록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 않아서, 그에 따른 불안이 엄습해오고, 현실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이끈다고 해도 우리는 어쩌면 더 큰 만족, 행복을 위해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역설’,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야기는 ‘서사’(내러티브)입니다. 사회(세계)는 서사의 집합체입니다. 개인도 또 다른 서사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한 개인도,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도, 그리고 사회의 집합체인 세계도 다층적이고 복잡한 서사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읽고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읽기 능력’이 수반됩니다. 그 역량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행복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다만, 이러한 공부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 환경 등 읽기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가령 ‘쇼츠’와 같은 짧은 동영상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복잡한 것을 이해(공부)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쉽고 단편적인 것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읽지 않고 보는 ‘구경꾼’의 지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유투브 시청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즉 공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지적이고, 문제의식입니다.
나아가 한국사회라고 하는 현실에서, 당장 입시를 앞두고 공부하는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로서 강사가 제시한 문제제기를 어떻게 수렴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는 질문이 당연히 수반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엄기호 강사는 최선을 다해 질문과 답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 할 답까지 제시해줄 수는 없습니다. 달라진 공부 환경에서 변화하고 적응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각 자의 몫, 우리 사회의 몫입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또한 사다리 교육의 허상 혹은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했다면, 아이들을 ‘묻지마식’으로 그 대열에 몰아넣기보다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대학을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의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와 인생의 다층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같이 그 세계를 펼쳐가거나 만들어 가자고 제안해보자는 것이지요. 물론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마당, 토론회라고 하는 장을 펼친 것이겠지요.
그랬습니다. 이날 이야기 마당에 참여한 사람들은 만족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각 자 개인의 세계에 들어가면, 각 자의 읽기 방식(!)에 따라 만족과 불만족의 스펙트럼이 나뉠 것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부여잡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사다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보려는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맞아 더 이상 사다리는 아니지’ 하며, 공부에 대한 개념과 방향을 전환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엄기호 선생의 강의와 질의응답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저마다의 공감 포인트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관한 정인애 넓세도서관 관장님은 넓세도서관이 ‘긴 고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엄기호 선생은 ‘긴 고리’라는 단어를 통해 공부가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긴 고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읽기 역량, 공부 역량이었지요. 넓세도서관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그러한 읽기 역량, 공부 역량을 채워주고자 긴 고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넓세도서관이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이번 공부 토론회를 마련한 것도, 변방에서 나와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긴 고리’의 접근 전략이라고 봐야겠지요. 꽉 채운 강연과 질의응답, 그리고 패널 토론을 통한 토론의 심화, 나아가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청취하려는 진행은 참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앞으로 남은 김주대 시인의 2회차 강연과 토론(6/20 오전 10시), 3회차(6/27 오전 10시)와 4회차(7/4 오전 10시) 워크숍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엄기호 선생은 사회학자이고, 많은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한국사회 교육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죠. 넓세도서관 이용자들도 만만치 않은 지성들이죠. 당연히 당일 3시간 동안 진행된 이야기들을 담기에 이 지면은 극히 일부만 담을 수밖에 없고, 또한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궁금한 이야기는 넓세도서관 홈페이지 후기를 파악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공익홀씨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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