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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평생학습원 시민특강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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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국민이 권력을 향해 하는 말’

2025년 7월 16일 밤 7시,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헌법, 시민의 힘을 발견하다.’라는 주제로 특강이 열렸다. 몰아치듯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청중석을 가득 메운 자리에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한동대 법학부 이국운 교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헌법의 핵심 가치를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또한 딱딱한 강연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경험담을 실마리 삼아 재미있는 이야기로 쭉 풀어나갔다.

이국운 교수의 입말로 현장 스케치 시작합니다!

제 기억에 1974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홍수환이라고 굉장히 잘생긴 팬텀급 권투 선수가 있었는데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라는 백인 선수와 권투 시합을 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다운도 한 번 시키고 판정승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어요.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홍수환 선수와 한국에 계신 홍수환 선수 어머니를 전화로 연결했어요. 딱 연결되자마자
홍수환 씨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자식이 말이야 까불어서, 좀 혼내줬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홍수환 씨 어머니께서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고 답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죠. 제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으로 학교에 남아서 법학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대에 들어와서 공부도 10년 가까이 했는데, 헌법 전공자라고 하면서 우리 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때 제가 여기저기 후배들 앞에서 무게를 잡고 강의도 했어요. 그 순간에 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때 제 뇌리를 스쳐가는 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 대한국민 만세다.’ 대한국민이라는 말을 홍수환 씨 어머니에게서 처음 들었어요. 홍수환 씨 어머니가 이북에서 내려와 배움이 짧아 말씀을 잘못 했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헌법을 찬찬히 읽어보니, 헌법을 말하는 주체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그 대한민국을 만들기로 약속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우리 대한국민인 거예요. 대한민국은 국민주권 나라다, 라는 추상적인 이야기 말고, 내가 헌법을 말하는 저 사람들 안에 포함되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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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9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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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교수는 헌법 전문을 천천히 읽어 주었다.
“우리가 흔히 헌법 전문을 읽을 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이렇게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잘못 인쇄하는 예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의 전체 주어는 ‘대한국민’이라고 강조하며, 오늘 강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과 ‘우리 대한국민’ 사이에 역사적 전환으로 인한 깊은 단절이 있다며 더 먼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1894년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민중이 자신을 다스리는 집강소를 만들었죠. 조선왕조는 이것을 반역으로 보고,
관군으로 진압하려고 했는데 당시에 조선왕조 관군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들어와요. 충남 공주에서 부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우금치라고 하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거기서 동학군이 아주 무참히 학살당하고, 그 뒤에 일본군과 관군이 전라도 남쪽으로 내려가 무참히 토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서, 김홍집을 중심으로 친일 내각은 갑오개혁(1894)을 합니다. 그 와중에 일본이 보기에 제일 걸림돌이 된 사람이 명성황후였어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일을 벌이게 되죠. 을미사변(1895)이라 얘기합니다. 그러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관 파천(1896)이라 부르거든요.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긴 한데요.

러시아 공사관에서 담 하나 넘으면 월산대군 집인데 그쪽으로 가서 덕수궁이라 삼고, 대한 제국을 선포(1897)합니다.
친러 내각을 만들고 고종은 대한 제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 건지를 가지고 한번 의견을 모아봐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1898년이 조선 역사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역사에 1898년, 1919년 그다음에 1948년, 1960년, 1987년 그리고 아마도 대통령 두 번 탄핵한 이때 정도가 우리 시민들 전체가 거리에 나와서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가지고 대규모의 토론을 했던 대표적인 연도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1898년에 서울(한성) 중심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굉장한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그때 그 일을 주도했던 사람이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결국 친구들은 죽고 자기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공부하고 미국 시민이자 의사가 돼서 돌아온 서재필입니다. 그분이 돌아오셔서 독립협회라는 걸 만들어서 독립신문도 발행하고, 언문으로 소통도 하고 만민공동회도 열어, 그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나라 만들기 열기가 서울을 중심으로 많이 퍼져가게 됐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민들의 많은 의견은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를 하자였던 거예요. 황제가 통치하지 않고 헌법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선출한 의회가 그 헌법에 따른 통치를 하는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때 전주 이씨 왕족의 한 사람이 사거리에 나와, 전제 군주제를 하지 말고 입헌 군주제를 하자고 말해 인기를 많이 끌었어요. 결국 반역죄로 한성 감옥에 한 5년 갇히게 됐던 분이 계십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이승만입니다. 그때 서재필 씨가 독립신문을 만드는데 한글 식자를 했던 분이 주시경입니다. 1898년은 굉장히
여러 가능성이 크게 보이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1899년에 고종 황제가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보부상들로 조직된 일진회를 동원해서 독립협회를 사실상 탄압하고, 집회도 못 하게 하고 일방적으로 대한 제국의 헌법을 선포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뭐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100년 전에 있었던 대한민국 국제 1조는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국’이다 입니다. 대한 제국은 누구의 나라냐면 황제의 나라다, 라는 뜻입니다.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1905)이 있은 다음에 1907년도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일본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준 열사를 밀사로 보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종은 결국 왕위를 뺏기게 돼요. 그리고 순종이 황제가 됩니다. 순종이 황제 아닌 황제 역할을 하다가, 1910년에 한일합방이 돼서 일본 왕을 우리 왕으로 섬기는 그런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서 고종 황제가 9년을 더 사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시게 됩니다. 1919년 3월 1일은 고종 황제가 돌아가셔서 장례 모시는 인산일입니다. 요새 말로 발인한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대한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결의를 한 날로 황제가 통치하는 전제 군주국이 아니고, 백성 모두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이 된 겁니다.

헌법학자로서 제가 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는 제헌헌법 본문 자체가 우리나라는 1919년 3월 1일에 기미 독립 선언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다만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할 수가 없어서, 4월에 상하이에 독립운동 세력들이 다 모여 임시정부를 구성했어요. 그 뒤에 일본이 패망하고 헌법을 1948년도 7월 12일에 제정하고, 17일에 선포를 했습니다. 17일에 선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날을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는 건데요. 제헌헌법을 만들 때 제헌 의회 의장은 이승만 박사가 하셨습니다.

해외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볼까요. 첫째는요. 미국 LA에서 저 동쪽으로 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면 리버사이드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리버사이드가 미국의 서부 개척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곳인데요.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에 오렌지 농장이 막 생기면서 부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 대한 제국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찾아갔던 분들이 거기까지도 가셨어요. 그분들의 리더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었습니다.

지금도 리버사이드에 가면 도시 한가운데 도산 선생이 걸어가는 동상이 있어요. 그분들이 태평양을 건너서 캘리포니아 남쪽에 가서 온갖 수모를 받으면서, 노동으로 모은 부를 가지고 안창호 선생은 나중에 대한민국 상해 임시 정부에 사무총장을 하셔요. 캘리포니아에서 보내오는 성금을 가지고 임시정부 재정을 감당했어요. 지금도 LA에 가면 리버사이드에서 시작했던 분들이 만든 조직이 남아 있습니다.
그 조직 이름이 <대한인국민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잘 아시는 안중근 이야기입니다. 청년 안중근이 대한 제국의 신민을 거부하고 만주와 연해주로 가서, 독립군에게 가담해 이런저런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여순감옥에서 결국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때 몇 달 계시는 동안 쓰신 유묵이 여러 편 남아 있거든요. 그 유묵에 쓰신 글씨 끝에 수장을 찍으시잖아요. 그 수장 위에 <대한국인>이라고 쓰여 있어요.
키워드는 자유입니다. 우리 대한 국민이 누군가 시켜서 대한민국을 시작하자, 우리 이 헌법을 약속하자, 그런 거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시키거나 억지로 하는 거라면은 기쁨도 없고 감격도 있을 수가 없죠. 우리 대한 국민이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면 우리 헌법은 아예 출발도 못 해요. 그런데 자유의 시작은 탈출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광야로 나가는 선택을 한 거죠. 태평양을 건너가거나, 만주나 연해주로 가서 정처 없는 삶을 기꺼이 감수하는 거죠.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앞에 헌법 개정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5·18 정신을 헌법 조문에 넣는 것과 대통령 4년 연임제로 개헌하겠다는 두 가지는 확실하게 하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지방 분권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간접적으로 말씀은 했어요. 어쨌든 앞으로 10번째 헌법 개정이 될 거로 생각하는데, 그 개정은 누가 하는 겁니까? 바로 대한국민입니다.

우리 대한국민의 관점에서 헌법 1조를 읽으면 이렇게 되죠.

우리 대한국민이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이 다시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질의응답]
◆ 북한 헌법에도 비슷한 형태의 전문이 있을까요?
▶ 우리랑은 헌법적인 이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서 헌법 본문만 가지고 평가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헌법에 해당하는 거를 북한에서 찾자면 조선노동당 규약이 되겠습니다.

◆ 다시 헌법을 개정하게 되면 전문에 5.18이 언급되는 거 외에 다른 것은 똑같을까요?
▶ 자율과 조화 다음에 저는 분권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이 다 좋은데요. 나라를 처음에 만들면서 했기 때문에 굉장히 중앙집권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했던 헌법 개정안이 있지 않습니까? 국회에서 거부해서 투표하지 못했는데 그 헌법 개정안에 지방 분권 부분을 만드는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위원장이었습니다.

◆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근거해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이 시대에도 저 말이 우리 피부에 와닿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저는 이재명 정부가 아무래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달래고,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찾을 거로 생각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가성비를 굉장히 따지잖아요. 그래서 평화적 통일이 되더라도 합리적인 계산에 기초한 통일을 원해요. 북한이 지금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할 거라고 봅니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인간은 법을 만들까. 동물과 달리 언어라는 매개체로 공동의 이념을 세우는 것일까. 이국운 교수는 자유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 방종이 아닌 어떤 틀 안에서의 자유라면, 그 틀이 바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틀이 헌법이라고. 이번 강연을 통해 자유를 위해 광장으로, 광야로 나간 선조들의 외침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묵직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 이국운(나라의 방향을 정하라고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서울대 법학과와 법학대학원 졸, 현재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
저서 : 헌정주의와 타자,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법률가의 탄생 등 다수

▶ 광명시 평생학습원은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민교육 특강’을 6월부터 11월까지 매월 1회씩 총 6회 진행하고 있다. 특강은 평화, 기후, 인권 등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시대적 가치와 태도를 주제로 다양한 강연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신청은 광명시 평생학습 통합플랫폼 ‘광명e지’에서 가능하다.

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홍보기자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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