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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모두 끝없이 움직이는 메아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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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여성폭력 피해 경험자 말하기’ 낭독으로 울린 연대의 무대 ]

' 활기에서 울림으로 '
9월 5일 오후,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는 ‘2025년 여성 폭력피해 경험자 말하기 – 움직이는 메아리’ 행사가 열렸다. 광명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이번 자리는 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와 나누기 위해 마련된 10번째 말하기 행사로, 올해는 특별히 낭독 공연 형식으로 꾸며졌다. 피해자가 직접 무대에 서는 대신, 객석에서 자신의 글을 함께 듣고, 낭독자가 그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과 활동가들은 이 특별한 형식 속에서 목소리와 마음이 어떻게 울림으로 번져갈지 기대 속에 자리를 채워갔다.

공연장 입구에는 ‘움직이는 메아리’ 포스터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순한 종이 현수막이 아니라, 마치 진짜 메아리가 이곳에서 울려 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층 더 힘차고 단단해졌다. 누군가는 반갑게 손을 잡으며 안부를 물었고, 또 누군가는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 앞에서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나눴다. 그 짧은 순간의 교감조차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연대, 작은 울림이 되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개회식 – 27년의 선언 '
개회식이 시작되자 공기는 단숨에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웃음이 오가던 공간이 차츰 고요해지며,
활기찬 소란은 잦아들고 모두의 표정에는 단호한 결심이 스며들었다. 오늘은 단순한 만남의 자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깊이 흔들어 놓은 폭력의 기억이 무대 위 목소리를 통해 다시 살아날 예정이었고, 우리는 그 기억을 함께 감당해야 할 증인으로 초대받은 것이었다.

첫 무대에 선 사람은 광명여성의전화 전영미 대표님이었다.
1998년 창립 이후 27년째 이어온 여성 인권운동의 발자취를 차분하게 소개했다.
단체는 그동안 성평등 사회를 위한 교육과 캠페인, 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과 지원,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지지하는 활동을 쉼 없이 이어왔다.

“연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이 뜻깊은 낭독 공연을 위해 애써주신 피해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짧지만 굵은 인사말 속에 지난 27년의 세월과 앞으로도 이어갈 다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객석에서의 박수는 오랜 시간 버텨온 여성들의 발자취를 기리는 의미로 다가왔다.

' 낭독 공연 – 말하기의 자리를 바꾸다 '
이날의 공연은 기존의 말하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피해자가 직접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낭독자가 무대에서 대신 글을 읽었다. 피해 당사자는 객석에 앉아 청중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출을 맡은 무랑무아 감독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나눕니다. 그러나 때로는 위치만 바꿔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오늘은 피해자분들이 객석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낭독자는 목소리의 매개자가 됩니다.”
단순한 자리바꿈이었지만, 효과는 크고 깊었다. 말하기와 듣기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목소리의 주체와 수용자가 새로운 방식으로 교차하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이번 낭독 공연은 <K에게>라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편지 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첫 번째 이야기 , 연아의 일기 '
낭독자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담담했으나 곧 떨림이 묻어났다. 연아의 글 속에서 첫 연애의 설렘은 곧 언어폭력으로 변질되었다.
“네가 문제야.”, “너 때문에 그래.” 같은 말들이 반복되자 연아의 자존감은 무너져 내렸다.
가스라이팅은 그를 관계 속에 묶어두었고, 폭력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연아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이별조차 온전한 해방이 되지 못했다.
낭독자의 목소리는 문장이 깊어질수록 흔들렸고, 때로는 멈칫거리며 객석의 숨소리를 붙잡았다.

' 두 번째 이야기 , 정원의 편지 '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가 담긴 편지였다. 불법 촬영, 강제추행, 성희롱, 가스라이팅… 다양한 얼굴을 한 폭력이 그녀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더 큰 절망은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학내 인권센터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의심했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기묘한 전도. 공론화조차 할 수 없었던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점점 작아져 갔다. 낭독자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담담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문장을 이어갈수록 감정이 차올랐고, 나중에는 울음을 애써 꾹꾹 누르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에도 끝내 북받치는 감정을 다 감추지 못한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이 낭독 속에 섞였다. 객석은 그 울음과 함께 글이 지닌 무게를 더 깊이 실감하며 숨을 죽였다.

' 청중의 체험 '
50분간 이어진 공연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었다. 함께 겪는 체험이었다. 피해자는 객석에서 자기 이야기를 듣고, 낭독자는 대신 읽으며 눈물을 삼켰고, 청중은 그 모든 과정을 감당했다. 공연이 끝난 뒤 “과호흡이 오기도 하고,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했다”라는 경험도 나눴다.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받아낸 체험이었다.

' 낭독자와 당사자의 목소리 '
공연 후 이어진 대화의 시간은 또 다른 울림이었다. 낭독자들은 오늘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순간.  온기와 용기, 아픔이 새겨진 인상적인 경험”

“제 목소리의 두 분의 이야기를 담기보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분이 들어줘 감사한 마음이다.”

무더운 여름 내내 땀과 눈물을 쏟아가며 연습한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무대였다.
피해 당사자의 소감은 더욱 인상 깊었다. 연아님은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 무대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비록 무대 위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객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로 듣는 경험은 오히려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정원님은 “다른 분들이 대신 울어주니 오히려 울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비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남겼다.

' 듣기의 의미 '
“듣기가 참 어렵습니다.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듣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말하는 것을 볼록하다고 하면, 듣는 것은 오목합니다.”

' 마무리 - 그치지 않는 메아리 '
행사가 끝나고도 객석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마주치며 여운을 나눴다. 감독님은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공연 내내 들었다고 했다. 단 한 사람이 끝까지 들어주고 지지해 준다면, 그 목소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두 끝없이 움직이는 메아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은 단순한 맺음이 아니라 오늘의 본질을 담은 선언이었다. 피해자의 글은 낭독자의 목소리를 통해 객석으로 울려 퍼졌고, 다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또 다른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글을 통해 또 하나의 메아리를 만들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 울림이 닿기를. 그리고 그치지 않는 메아리로, 더 멀리 퍼져가기를.

감독님이 남긴 이 말처럼, 이날 공연의 본질은 ‘듣기’였다.
정원님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듣기는 의심하지 않고, 따져 묻지 않고, ‘네가 겪었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편지 속의 K는 피해자를 지지하고 이해해 주는 모든 이였다. 그날 공연장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우리는 모두 K였다. 말하기와 듣기는 서로를 떠받치며 공존했고, 청중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증인이자 연대자가 되었다. 그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의 울림 안에서 연결되었다.

이번 행사는 공연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었다. 피해자가 객석에 앉아 스스로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은 발화와 청취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만들었다. 이 구조는 연대의 자리를 확장시키고, 듣는 이들에게 지지와 책임의 무게를 더욱 선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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